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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놈 Venom (2018) : '안티 히어로' 베놈과 에디에 대한 분석/해석

감상/비평/해석. 홍보하는 데마다 '빌런 히어로' 라는 용어를 쓰던데 안티 히어로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듯함.



 베놈은 왜 뜬금없이 지구가 좋아졌을까? 왜 갑자기 에디에게 네가 좋다며 고백을 한 걸까? 그래서 트레일러랑 포스터에서 얘네가 영웅인가 악당인가는 왜 그렇게들 물어본 건데?

 이런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 영화 속 여러 장면들을 좀 더 가치있게 해석해 보는 글. 어차피 베놈이 지구에 오기 전에 어떤 성격이었고 무슨 생활을 했는지 확인할 방도가 있는 게 아니라서, 그가 무슨 행동을 해도 보이는 그대로 해석할 수 밖에 없음. 그래서 갖은 베놈의 행동들이 별 이유도 없이 '에디가 좋아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임. 오직 그런 명목 하에 모든 행동을 했다고 읽어버리면 에디와 베놈이 왜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가 되었는지에 대한 개연성은 장르를 로맨스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유의미하게 설명할 수가 없음. 깊이 없는 서사가 되어버림.

 하지만 영화 전체의 맥락에서 베놈이 왜 그런 행동을 했어야만 했는지를 에디의 성장과 함께 해석해보면, 에디에게 베놈은 어떤 존재이며 에디는 베놈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거고, 그래서 그들이 왜 '마블 최초의 빌런 히어로' 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1. 에디 브록

 "내 이름은 에디 브록, 직업은 기자다. 나는 늘 습관처럼 정부조차 무관심한 일에 의문을 품는다..."


 에디는 부정한 일을 사회에 고발하기 위해 뉴스를 만드는 기자임. 하지만 기자가 만드는 뉴스는 내용은 정의로워도 그것을 만들기 위한 정보를 얻는 과정은 마냥 깨끗하기는 힘들 것임. 빛이 비치는 곳마다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그가 정의를 지키는 데도 어떤 그림자가 뒤따르기 마련임. 초장부터 에디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회장인 칼튼 드레이크의 뒤가 구리다면서 그의 부정을 만천하에 알리는 영웅이 되어보고자 함. 하지만 부정을 증명해낼 자료는 여자친구 노트북에서 몰래 훔쳐보고 얻어낸 것임. 결국 에디는 무모한 짓을 한 대가로 직장을 잃고, 잘못을 해놓은 게 있으니 애니도 잃고, 원래 에디를 구성하던 주변 관계에서 단절되고 만다. 그저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비리를 밝혀보겠다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말임.

 인터뷰가 실패로 돌아간 이 시점에서, 에디가 어떤 미래를 그려가며 위험을 무릅쓰고 판을 벌렸는지, 에디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 이 모든 일에 대해 주변인들은 그저, 에디가 무모하고 어리석었으며 비도덕적인 짓까지 서슴치 않게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음.

 블루레이에 실린 삭제씬에서 이와 관련해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데, 에디는 어려서 '장난감을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그래서 장난감을 훔쳤다고 함. (;) 그걸 잘 돌려줬으면 '장난감을 찾아 돌려준 멋진 어린이 슈퍼히어로!' 따위의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만, 결국 장난감을 돌려주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은 슈퍼히어로 같은 사람은 절대 되지 못하겠더라고 얘기함.

 이 이야기에서 그는 뭐가 돼나? 장난감을 훔쳐간 도둑일 뿐임. (중요한 부분이지만 너무 직설적으로 맥락을 다 설명해버려서 본편에 싣지는 않은 듯함.)  (아마 이 비유를 생각해보면, 앤의 노트북을 훔쳐본 것도 '자다 깼더니 노트북이 보이길래...' 가 아니라 처음부터 정보를 얻어낼 심산으로 그 날 데이트를 가졌을지도 모르겠음.) 

그래도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니까 정말로 인터뷰에서 한 건 건졌다면, 애니한테 미안하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어찌저찌 용서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디는 여자친구 노트북이나 훔쳐본 주제에, 인터뷰도 제대로 못하고, 칼튼에게 찍혀서 직장도 잃고, 결국 자신을 용서해줄지도 모를 만큼 서로 사랑했던 애니까지 떠나보내고 말았음. 그야말로 '루저' 로 몰락해버림. 

 

 그를 루저로 낙인 찍은 것은 사회였지만, 그 스스로도 자신의 정의감에 회의를 느끼는지 관객들이 모두 '야 저 강도놈 큰일 나겠다' 고 생각한 장면에서 에디는 얌전하게 물건만 사고 나감.

 

 에디 브록, 직업은 기자였고, 정부조차 무관심한 일에 의문을 품으며 진실을 밝혀내려고 했지만...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벌여놓고는 후사를 책임지지 못했음. 장난감을 훔쳐놓고는 돌려주지 못한 그는, 더 이상 '정의로운 기자 에디 브록' 이 아니라 그냥 도둑놈이고 루저일 뿐임. 그를 둘러싼 사회가 그렇게 말하고 그 스스로가 그렇게 살기를 선택함. 


2. 자초한 거야

 하지만 에디가 자신의 악행에 대한 정당한 벌을 받은 것인가... 라고 생각해보면, 그렇게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이 정의롭지 않기는 했지만, 칼튼 드레이크 역시 정의로워서 승리자는 아니며, 옳은 일 해보겠다고 으쌰으쌰하는 기자를 냉큼 잘라버린 방송국도 도덕적으로 그다지 정당한 처사를 보인 것은 아니다. (사업적으로는 자르는게 당연히 맞지만, 칼튼의 영향력을 충분히 알면서도 에디를 보낸 이상 에디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음.) 교묘하게 노숙자들을 잡아다가 몰래 임상실험을 해대는 대기업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데, 그거 밝혀보겠다고 회사 말 좀 안 듣고 도둑질 좀 한 일개 기자는 왜 자기가 발 담그던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듯 배척당해야 하는데? 왜냐면 에디에게는 돈도 권력도 뭣도 없었으니까. 자기가 저질러 놓은 일을 남이 들췄을 때 위험을 감당할 아무런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에디가 루저가 된 이유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엿맥일 '힘'이 없어서였음. 

 물론 영화는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에디에게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님. 장난감에 대한 에디의 얘기를 다시 생각해보자. 에디는 좀 부당한 방법을 쓰더라도 더 나쁜 놈들을 맥일 수 있다면 괜찮으리라 생각했을 거임. 그 부당한 방법도 어쩌면 일이 잘 해결되고 나면 수습이 가능할 거라고 판단했을 테고. 그러나 실패했을 때의 대책은 전혀 생각하지 않음. 부당함에 대한 책임을 운에 맡겨두고선 나몰라라 했음. 본인의 정의감만으로 사건이 무던히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히 경솔한 일이었고, 결국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건 에디 본인이 맞았음. 더 이상 칼튼과 방송국이 나쁘다고 얘기해봤자 자기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님. 에디가 스스로를 루저라고 정체화한 것 역시 이에 대한 죄책감이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함. 



3. 베놈은 에디의 HIM

 하지만 그렇게 결론짓더라도 한 가지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방송국과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악행을 저지른 목적부터 잘못되었지만, 에디는 목적이라도 정의로웠기 때문에. 에디에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그 하나 뿐이었다고만 얘기한다면, 성공만 했으면 나름 괜찮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음.

 좀 구린 과정을 거쳤지만 그 인터뷰로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비리를 밝혀냈다면? 에디만 손을 좀 더럽히면 더 큰 불의를 폭로하고 사회가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 할 수 있었다면? 에디가 목적에 따르는 부당한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었다면, 그럴 힘이 있었다면. 그럴 때는 에디도 영웅이라고 쳐줄 수 있을까?


(그래서 베놈이 해드립니다)

 이런 가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영화 전반에 만들어 놓고, 베놈이라는 존재를 투입하면서 에디가 라이프 파운데이션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실체화 하는 거임.

 정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부정한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을 때, 그 과정만 거치면 반드시 승리에 도달할 실질적인 힘이 생긴다면, 그 결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4. 에디의 본심

 베놈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의 판단을 끼워맞추지 않음. 윤리적, 도덕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싶은지가 판단 기준의 전부임. (최소한 그런 것처럼 보임.) 

(자막에서는 '누구 맘대로!' 지만, 원문은 '우리에겐 아니지'. 에디 혼자였다면 막다른 길이었겠지만 베놈과 함께인 '우리'에게는 '경계'가 의미가 없다는 것.) 

 이런 베놈의 성격은 에디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함. 베놈이 바라보고 달리는 결과가 결국 정의로운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전혀 정의롭지 않은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건 인간의 기준에 있어 정의롭지 않을 뿐, 베놈에게는 목표 달성을 위한 단순한 도구로서 가치판단의 대상조차 되지 않음. 


 3에서 베놈이 에디의 '힘'으로서 작용한다고 얘기했음. 베놈의 행동은 에디의 생각의 발현과 같아, 영화는 베놈의 언행을 통해 에디가 생각하는 것들을 '외계생물체' 의 행동으로서 보여줌. 외계생물체면 누가 쫓아올 때 담 넘어 오토바이 타고 뛰어 오를 수도 있지. 외계생물체면 건물에 들어가고 싶은데 허가 안 날 때 외벽 타고 등반할 수도 있는 거지...... 그 행동들이 모두 비상식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던 존재인 베놈 그 자체의 능력으로만 보이고, 그래서 그럴 수도 있다고 납득하게 되지만, 사실 도망가고 건물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에디의 바람이고 에디의 의지였음. 영화에서는 에디가 베놈에 의해 자기 의사 없이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베놈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에디의 마음이 전제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임. 베놈은 에디의 정의감에 있어 '과정에 대한 책임' 을 질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며, 원래 목표만을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작용을 함.

 물론 그런 베놈의 행동 덕분에, 숙주인 에디는 처음에는 상식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처럼 그려짐. 레스토랑에서 배고프다고 아무런 음식이나 손으로 집어서 와구와구 먹는다거나, 덥다고 수조에 들어가서 앉아버리는 모습 등... 하지만 이런 장면들도 단순하게 생각해서 에디가 배가 고프고 더워서 가장 일차적으로 생각해낸 해결방식을 윤리적 기준이고 뭐고 없는 베놈이 알아서 작동시킨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임. 에디한테 큰 소리 낸 건 애니인데 자꾸 댄 얼굴을 주무르거나 댄을 공격하는 베놈의 모습도 아마 에디의 무의식의 발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에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베놈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물론 이 행동들은 타인이 보기엔 너무나도 이상한 행동들임. 에디가 계속 사회에서 살아갈 생각이 있다면 이럴 힘이 있더라도 고삐 풀린 채 나돌아 다니면 안 될 것이다...... 수조씬에서 많은 관객들이 공감성수치를 그냥 느낀 게 아니다.


 (단면적인 비유지만 이런 모습은 소리에 대한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베놈에게 유해하다는 4000Hz~8000Hz 의 주파수에 대해, 횟수를 거듭하며 저항을 하게 되는 에디의 모습. 부당한 외부의 자극을 참을 수도 없고 참을 이유도 없던 에디의 본심이 드러나는 과정 같음.)


5. 휘둘림

 베놈을 에디의 또 다른 일면으로 보기 시작하면, 작중 에디의 변화를 좀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음. 그리고 에디가 베놈을 거부하는 과정도 에디 그 자체의 심리 변화로 읽을 수 있다.

 칼튼의 부하들이 집에 들이닥친 장면에서도, 에디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에서 자기를 찾으러 올 줄을 알았을 거임. 하지만 그대로 항복하면 방송국에 정보 못 넘김 > 불의 폭로 못함 > 더욱 더 커져가는 데드 파운데이션 루트를 탈 것이 눈에 선하니 손을 들지 않고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 것. 그치만 에디는 그럴 힘이 없었고, (정확하게는 그런 게 없는 줄 알았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생각이 있다면 인생 더 말아먹기 전에 그냥 손 들고 순순히 끌려가는게 나았을 것임. (이런 에디의 자아의 충돌이 베놈과의 몸의 주도권 싸움으로 나타나는 것 같지 않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거세게 내적갈등 겪는 인간 같음.)  손을 드는 자신의 모습은 한심하지만, 생각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만하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디.


 그리고 대체로 이런 에디의 '내적 갈등' 은 베놈의 승리로 끝나는데, 에디는 이것을 두려워 함.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가 바라는 윤리적 틀에 부합하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임. 과정 끝에 있는 목표가 선하더라도 부당함이 있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니까. 사회에 발 담그고 있는 이상 최소한, 악행을 저질러 놓고서 합리화에 휘둘려서는 안 되니까.

 베놈 덕분에 목숨을 건진 에디에게, 베놈은 '너는 내 탈 것'이라고 말함. 베놈은 에디의 생각을 기반에 두고 행동해야 하는데, 도리어 에디의 행동이 베놈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에디는 베놈이라는 힘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그 힘을 포기하면 당장 살아남을 수도 없으니까. 

 에디는 베놈의 힘을, 자신을 지배하는 생각을 무서워한다. 힘만 있다면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사람을 죽이고 경비원들을 쓰러트려도 되는 건지. 그렇다면 라이프 파운데이션과 저와 다를 바는 무엇이란 말인가? 악행은 자신을 갉아먹는 것을 각오했더라도, 그것에 무뎌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아픈 게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기생충이 속을 갉아먹는 건 아플 뿐이지만, 주도권을 빼앗겨 스스로가 기생충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에디는 위험한 순간이 다가오면 누군가 자신을 저지해주길 바란다. 히어로가 자신의 약점이 크립토나이트라고 얘기하고 다녀서야 큰일이지만, 에디는 스스로 영웅도 아니고, 베놈의 힘에 지배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니, 자신이 타락하고 있다면 그를 막아줄 사람이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6. '죽어가는' 에디

(댄의 표정이 정말 마음에 든다.)

 주변 사람들부터 에디 본인까지, 베놈과 베놈으로 상정되는 자신의 '좋은 결과를 위한 부당한 과정' 이 에디를 죽여간다' 고 생각하고 있다.

(다 죽어가는 식물, 다 죽어가는 루저 에디.)

 그렇지만 정말로 죽는다는 건, (작은 악행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마음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을지. 스스로 에디 브록이길 거부하고 루저이길 선택한 그는, 최소한 삶이라는 구실은 갖춘 것 같았지만, 이미 죽어가고 있었음. 붙어 있는 것 같아도 건드리면 곧 부서져내릴 화분 속 식물의 이파리처럼.

 그래서 에디는 결국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비리를 밝히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싸우러 가는 것임. 그것이 자신의 신변에 더 큰 위험으로 돌아올지라도.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정의를 위하는 마음과,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부당한 일들에 대해 무뎌지지 않도록 스스로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자세가 그를 살아있게 만들고, 그를 기자 '에디 브록' 으로 만드는 것임.

 결국 영화는 이것이 에디 브록과 방송국 - 칼튼 드레이크의 차이이며, 칼튼은 빌런이지만 에디는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하는 듯함. 베놈이라는 힘을 가지고 에디가 나쁜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에디가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 것임. 하지만 베놈과 함께 할 때 에디가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에디가 정의로운 마음으로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멀리 보았을 때 칼튼 드레이크의 행동도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영화에서는 베놈-에디와 라이엇-칼튼의 관계를 반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칼튼이 라이엇을 만나 더 나쁜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칼튼이 처음부터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저 라이엇이 사람 먹는 외계인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에디는 결국 베놈을 떼어내버리지만 더 이상 칼튼과 라이프 파운데이션에 굴복하지 않음. 그렇게 반항하다간 빽도 없고 힘도 없는 에디는 정말로 말 그대로 죽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정보는 넘어갔고, 더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베놈이 있는 곳도 불지 않음.

 사실 도라의 부탁을 받고 실험실에 몰래 들어갔을 때부터 에디는 베놈 없이도 루저가 아니었음. 정의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없었으면 그런 위험한 부탁은 받지 않았을 테고, 그게 불법이고 나쁜 일이 되더라도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현실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영화 Venom은 이렇게 노력하는 그를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냐고 관객을 설득함. 그래서 세상을 구할 맘도 없었던 에디는 계속해서 루저로 그려졌지만 세상을 구할 마음이 생긴 에디는 힘은 좀 없어도 더 이상 루저는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임.


 결국 모두가 의문을 가졌던 저 대사(...)는 에디에게 내재된 변화가 베놈으로서 드러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저 대사 자체도 '네가 내 마음을 바뀌게 했어.' 인 동시에 '(내가 마음을 바꾼게 아니라) 마음을 바꾼 건 처음부터 너였다' 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


 '동족을 배신하고 지구에 남고 싶을 만큼 네가 내 마음을 다 흔들어놨어...♡' 라는 로맨틱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왜 그들이 더 이상 루저가 아니라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되는지에 대한 개연성은 여기에 있다. 에디가 변하지 않았으면 베놈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영화가 보여준 것은 에디가 변해온 과정이었고,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구를 구할 영웅은 없었을 거라고.

 그렇다면 에디의 심경과 행동의 변화를 함께 지켜봐온 우리들의 눈에는 그들이 영웅으로 불려 마땅한 존재로 보이는가. 장난감 도둑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속을 알고나서는, 장난감을 무사히 돌려준 과정까지 보고서도 아이를 비난할 이유는 없는 게 아니냐고. 영화 Venom은 관객들에게 이런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베놈과 에디가 '빌런 히어로', '안티 히어로' 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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